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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세상을 바꾸는 촉매반응의 발견과 미래

  • POSTED DATE : 2021-10-08
  • WRITER : 화학과
  • HIT : 4018

2021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의 연구실에서 필자가 연구생활을 할 때 함께 찍은 사진이다.  2015년에서야 본격적으로 포스닥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이때 리스트 교수가 제안한 연구테마는 ”케톤을 친전자체로 유기촉매 반응에 활용해 보자”였다.   배한용 제공


올해 노벨화학상은 비대칭 유기촉매반응 분야를 개척한 2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베냐민 리스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그 주인공들이다. 필자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리스트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리스트 교수는 2008년 성균관대에 방문교수 자격으로 방한하였는데, 이때 우연히 필자가 재학중이던 성균관대 화학과에서 개최한 강연에서 큰 영감을 받아 학부생 자격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리스트 교수의 권유로 마침 비대칭 유기촉매반응을 마침 연구하고 있던 송충의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연구생활을 시작했다. 유기촉매반응은 현재까지 필자의 연구 인생 그 자체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올해도 독일을 떠나오기 전 리스트 교수 연구실에서 시작한 향수원료 천연물 전합성에 관한 연구를 국제학술지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하였으니 햇수로만 벌써 13년째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비대칭 유기촉매반응이란


보통 카이랄성(거울상성)을 지난 유기물질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생체촉매 혹은 금속촉매와 결합된 카이랄성 리간드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리스트 교수와 맥밀런 교수에 의해 각각 독자적으로 유기촉매 분야가 2000년 거의 같은 시기에 알려졌다. 이후 학계는 물론 산업계에서도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 현재는 유기촉매를 이용한 합성방법론은 완전히 정립된 하나의 도구로서 다른 촉매와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한다.


리스트 교수는 특히 아미노산의 하나인 카이랄성 프롤린을 이용해 최초의 비대칭 크로스-알돌반응을 성공적으로 보고하였다. 반면, 맥밀런 교수는 직접 개발한 이미다졸리디논을 이용한 디엘스-알더 반응을 발표하였다. 현재 필자가 강의하고 있는 학부 유기화학에 등장하는 반응들을, 기존에 교과서에 소개되지 않은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도 완수할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이후 두 그룹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된다. 리스트 교수팀은 유기촉매 그 자체가 가진 반응성과 선택성에 관심을 가지고 새롭고 다양한 촉매개발에 중점을 두는 반면, 맥밀런 교수팀은 이미다졸리디논을 기본 촉매로 해 다른 유기금속 혹은 광산화환원반응 시스템과 결합을 시도했다. 두 그룹의 방향성 모두 현재 유기합성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면서도 새로운 발견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나가고 있다고 보인다.리스트 교수는 효소를 구성하는 단일 아미노산이 그 자체적으로 촉매반응을 반응을 촉진할 수 있는지 궁금해 했다. 유기 촉매역할을 하는 아미노산인 프롤린을 이용하여서 카이랄성 베타-하이드록시-케톤 구조를 지닌 생성물을 만들어내는 알돌 반응을 촉매화 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다른 방법론에 비해 보다 효율적이고 훨씬 더 높은 광학선택성을 지닌 거울상 생성물을 형성한다는 것을 2000년 발견했다. 이와 같은 유기촉매 반응은 반응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의 측면으로 볼 때, 루이스 염기 유기촉매다. 유기촉매는 루이스 염기, 루이스 산, 브뢴스테드 염기, 브뢴스테드 산 등 기본적으로 4가지의 촉매반응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라디칼 유기촉매 반응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프롤린으로 대표되는 루이스 염기 촉매로 시작된 리스트 교수의 연구는, 이후 학계 및 산업계에 매우 큰 임팩트를 가져왔다. 전세계의 연구자들이 앞다투어 유기촉매 분야의 연구에 뛰어들었고, 매우 중요한 촉매들이 개발되었다. 특히, 일본의 연구자들이 키랄성을 지닌 포스포릭 산 브뢴스테드 산 촉매를 2004년에 개발했는데, 이 촉매 역시도 현재까지도 산업적으로 매우 널리 사용되고 있다. 리스트 교수의 연구팀도 루이스 염기와 브뢴스테드 산 유기촉매 연구에 뛰어들었다. 특히, 리스트 교수의 연구실에서 이어지는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키랄성을 지닌 음이온 에 의해 비대칭 유기촉매반응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 발견을 ACDC, 비대칭 음이온-유도 촉매반응으로 명명했다. 이 현상을 이용하면 기본적인 브뢴스테드 산 뿐만 아니라, 루이스 염기와의 협동 촉매반응에 까지도 확장될 수 있음을 보였다.


최근에는 이러한 ACDC 컨셉을, 실릴륨 루이스 산 유기촉매반응에까지 적용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실리콘 루이스 산과, 카이랄 음이온에 의해 촉진되는 촉매반응을 개발함에 이르렀다. 즉, 실릴륨-ACDC 유기촉매 방법론을 통해, 기존에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에스터와 다이엔 간의 디엘스-알더 반응은 물론, 반응성이 매우 낮은 트리메틸알릴실레인과 알데하이드와의 호소미-사쿠라이 반응도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이처럼 끊임없이 다양한 촉매반응의 개발을 통해, 기존에 산적해 있는 화학적 문제가 하나씩 해결됐다.


리스트 교수는 매우 도전적인 문제를 유기촉매의 개발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언뜻 지켜보면, 도전하는 반응 자체들이 기존에 시도된 바가 있는 반응을 다시 찾아보는 것으로 보여질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기질의 범위’ 을 극복하는 것은, 유기합성 방법론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실질적인 난제다. 대부분 이 난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다. 리스트 교수는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기질에 도전하여 문제를 붙잡고 해결 하는데에 매우 큰 노력을 쏟았고, 이제서야 그 오랜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며 결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고 보여진다.


유기촉매 연구의 시작


필자는 앞서 언급하였듯, 대학 학부과정 3학년 때에 리스트 교수를 만나 유기촉매에 관하여 알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에 한국어로 된 유기촉매에 관한 기사가 거의 없을 만큼, 매우 생소한 분야였다. 함께 내한했던 막스플랑크 연구소 균일계촉매 부서의 그룹리더로 재직중이던 양정운 박사(현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을 만난 계기도 그것이었다. 양 박사는 리스트 교수가 고용한 첫번째 박사후연구원이었는데, 그룹리더이던 그와의 교류 역시도 필자의 연구분야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양 교수는 유기합성분야, 특히 유기촉매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논문을 낸 첫번째 한국인이다.


막스플랑크연구소는 독일 서쪽의 뮬하임 안데어 루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위치해 있다. 1914년에 본 연구소가 설립될 당시 붙여진 이름을 전통으로 여기고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현재는 유기촉매반응, 균일계 및 비균일계 촉매, 이론화학 등 화학촉매 전반의 다양한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다. 명실공히 세계최고 수준의 과학연구소다. 이미 이곳에서 노벨화학상이 나온 적이 있다. ‘저압 폴리에틸렌 합성’, 즉 고분자 합성에 관한 연구로 칼 지글러 교수가 1963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리스트 교수는 두번째 노벨화학상 수상자다.

필자는 이곳에 2013년에는 교환연구원으로 방문했고, 박사학위를 마친 2015년에서야 본격적으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리스트 교수가 제안한 연구테마는 ”케톤을 친전자체로 유기촉매 반응에 활용해 보자” 는 간단한 문장 뿐이었다. 당시만해도 매우 도전적인 과제였다.하지만 필자는 리스트 그룹에서 발간한 거의 모든 논문을 다 읽고 아이디어를 준비해 갔는데, 이것이 마침 리스트 교수의 제안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왜냐하면 그간에 행해온 연구를 통해 유기촉매의 한계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운이 좋게도 매우 열심히 연구생활에 뛰어들어, 초기에 매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리스트 그룹에서는 광학선택성이 90%ee(광학적 순도) 이상의 값을 얻으면 간소한 파티를 연다. 박사후연구원을 시작한 3달째에 90% ee 파티를 할 수가 있었다. 물론 극도로 운이 좋았던 경우이고, 한국인 동료 연구원이던 이성기 박사(DGIST 신물질과학전공 교수) 과 김혜진 박사(현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을 비롯한 다른 연구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다.


PPM 이하의 유기촉매반응 개발


필자는 리스트 교수와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PPM(100만 분의 1) 이하의 촉매량으로 작동하는 비대칭 알돌반응’을 연구한 것을 최고 성과로 꼽는다. 새롭게 개발한 카이랄성 IDPi촉매는, 무카이야마 알돌 반응으로 잘 알려진, 실릴-케텐-아세탈 이라 불리우는 친핵체와 케톤 친전자체의 결합 반응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를 비대칭 유기촉매 반응으로 성공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빠른 초기결과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반응을 원하는 수준의 높은 광학선택성으로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촉매를 합성하기까지는 1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역시 공동 연구원들과의 사투 끝에 성공적으로 논문을 2018년 ‘네이처 화학’에 발표할 수 있었다.

이처럼, 리스트 교수의 연구실은 공동연구를 적극 장려하며, 팀워크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연구문화를 가지고 있다. 리스트 교수도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즐기면서, 열심히 문제해결에 몰입하다 보면 좋은 결과들이 있을 것이라고 항상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다소 엄격해 보이는 특유의 외모와는 달리, 항상 유머감각과 웃음이 넘치고,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한 동료이자 지도교수셨다. 실제로 필자를 친구라 칭하면서 격의 없이 대해 주셨다.


유기촉매의 미래


리스트 교수와 맥밀런 교수에 의해 문이 열린 유기촉매는 완전히 새로운 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올해 노벨상 이전의 학계에서의 인식은 ‘유기촉매가 과연 금속촉매를 대체할 수 있는가?’ 가 지배적인, 다소 회의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필자가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한 인터뷰에 초청되어 갔을 때에도 들은 질문이다.


그때와 지금의 필자의 생각은 여전히 같다. “아니요, 유기촉매 반응과 금속촉매가 갈 방향이 다릅니다. 유기촉매는 금속이나 생체촉매들이 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제3의 길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이라는 점이다.  리스트 교수와 필자가 공유했던 모토인 'world changing catalysis(세상을 바꾸는 촉매반응)'을 개발하기 위해 필자와 연구원들은 오늘도 함께 달리고 있다.